머리도 식힐겸 혼자서 노트북 하나 딸랑 들고서 스땡 커피숍에 무작정 엉덩이 들이밀고 앉은 날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서칭도 하고 글도 써보기도 하고 나만의 시간을 참 무던히도 잘 보내고 있었어요. 시간보내기 대회에 나가면, 아마도 중상위권은 따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v
늘그렇듯, 저는 아메리카노 톨사이즈로 시켜서 홀짝홀짝 마셔댔어요. 한꺼번에 많이 먹을세라 은근히 집중이 되더군요. 이렇게 쓸데없는 일에는 굉장히 몰두하는 저의 경향이.. 있답니다. 하핫. 그리고 동시에 '아, 아이스 말고 그냥 따뜻한 걸로 시킬걸..' 후회를 했어요. 항상 시켜놓고 이러는게 제 자신도 싫지만, 막상 카운터에서 주문할 때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마는걸요.. 이게 과연 나이탓인지 자문해봅니다. 고작 30대 초반인데 말이죠.
추위를 많이 타는 대프리카(대구광역시) 출신인지라 얼음이 많이든 것을 오랫동안 마시면 이부터 덜덜 떨려오더라고요. 결국은 숄더백 구석진 곳에 쑤셔넣어온 여름용 담요를 꺼냈어요. 예상했던 것보다 좀 더 빨리 꺼냈네, 궁시렁 거리면서 어깨에 한번 스윽 둘렀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최대한 적게 나오는 자리로 재빨리 옮겨보기도 했지요.
다시 새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문장 한줄 쓰려는데 맞은편 창가 자리에 한 여성과 여자아이가 함께 앉더라고요. 사이좋은 모녀처럼 보였어요. 아이는 분홍 레이스로 수놓아진 커다란 머리띠를 하고 있고, 진짜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보석이 촘촘히 박힌 크로스 미니백을 연신 만져대며 "엄마는 뭐먹을거야?!" 질문을 하더라고요.
"응. 커피마실거야. 저기서 주문하고 금방 올게.
연지야,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거 이거 보고있어~"
테이블 위에 놓인 책에는 아이가 직접 오리고 붙인 종이접기와 그 밑에 영어단어가 적혀있었어요. 아마도 오늘 배웠던 내용인 듯 했습니다. 이쯤되면 제가 하던 일에 몰두해야 하는데, 제 성격상 이 모녀의 모습에 계속 관찰하게 되더라고요.
아이는 책을 보면서 손으로 가리키며 영어로 중얼대는듯했습니다. '오, 제법인데?' 멀리서 보기에는 단어뿐만 아니라 구문도 보였고 언뜻 문장 두어줄도 있는 것 같았는데, 아이는 망설임없이 술술 읽더라고요. '역시, 나 어릴 때와는 완전 다르군. 요즘 애들이 똑똑하긴 하나보네.'
그때 아이 엄마가 흰색 머그잔과 함께 햄버거 샌드위치가 놓인 트레이를 들고 왔어요.
"연지, 착하네~ 역시 누구딸?!"
"와, 그거 뭐야? 빵?!"
"응, 맛있는 거 사왔지. 여기 빨간색은 토마토야. 저번에 토마토 배운 거 기억나? 영어 스펠링 말해볼래?"
"..."
빵을 사가지고 온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던 아이는 순간, 흥분하는 눈빛이었어요. 모녀가 의자에 앉으니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셨는지 이내 엄마가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내리면서 높이를 맞추고 있었죠. 그때였어요. 음식을 바라만 보는 아이의 인내력이 끝이났나봅니다. 커다란 포크로 샌드위치 윗부분을 가격했어요. 정말 있는 힘을 다했는지 접시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습니다. 포크와 유리접시가 맞닿는 충격이었지요.
"야~~아!! 연지, 너! 내가 먹으라는 소리도 안 했는데! 가만히 있으라 했잖아! 죽을래?!"
그 시각의 카페는 만석이었고 유모차 부대 마미들의 모임도 군데군데 있었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날이선 대한민국의 한 어머니의 목소리에 코잠 자고 있던 갓난 아이들이 단체로 울기 시작했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 모녀쪽으로 향했어요. 저 또한 놀라서 한동안 멍한 상태였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됐냐고요? 안타깝게도 시선을 견디지 못한 모녀는 짐을 싸서 휘리릭 나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본 아이의 엄마는 최대한 아이 눈높이에 맞게 말하려고 애쓰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려는 굉장히 자상한 부모였어요. 소리를 지르기 전까지는요. 그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약간은 자신이 없더라고요. 기가 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
역시 엄마도 사람이기에 아이의 돌발행동에 머리보다 마음 깊은곳 본능이 먼저 나오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어요. 왜냐, 사람이니까요. 요즘 아이 교육과 음식, 놀이방법 등 '이러이러해야지만 좋다, 그래야지만 좋은 mom이다' 여러모로 짐을 지우는 것 같아요. 살다보면,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건데, 심한 흑백논리로 치우치는 건 아닌지 씁쓸할 때가 좀 있더라고요.
꽉 조이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금은 느슨하게,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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